약전

인산 김일훈 선생

1909년 3월 25일 활인구세의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다.

활인구세의 80년! 병들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 인산 김일훈 선생은 1909년 기유년 조선 순종 3년 음력 3월 25일 밤 10시쯤 부친 언양김씨 김경삼과 모친 강릉 유씨 사이의 7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함경남도 홍원군 용운면 연흥리, 구름 속에서 용이 품안으로 날아드는 태몽이 있어, 구름 운(雲)자, 용 용(龍)자 ‘운룡’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이름을 해방 직후까지 쓰게 된다. 본명은 김철진(金哲鎭), 맏형은 두꺼비집을 발명한 김봉진(金鳳鎭)이다.

타고난 예지력 으로 만물의 약리작용 꿰뚫어 예전의 세상에 온 뭇성인들이 그러하듯 선생 또한 유년시절 남달리 총명할뿐더러 예지력을 발휘해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선생은 네 살 무렵 이미 한글을 떼고, 한글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창제되었음을 간파하였다고 한다. 한글을 터득한 데 이어 옥편을 떼고 한문본 삼국지, 당시, 두시, 강희자전 등을 차례로 독파하는 믿기지 않는 총명함을 보였다.

세상에 둘도 없는 선생의 특출난 의술은 생이지지(生而知之), 곧 타고난 것이었다. 선생은 말과 글을 알면서부터 우주만물의 이치를 꿰뚫고 질병의 유무와 치료약물에 대한 예지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소시적부터 시작된 불가사의한 구료신화

일곱 살 때 비가 개인 하늘의 오색무지개를 보고 우주의 비밀과 약리작용을 활연대오한 선생은 공간 색소 중의 약분자 합성방법을 모색 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때부터 병명도 모른채 숨져가는 이웃의 환자들을 구료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절, 독사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에게 동해산 마른명태 다섯마리를 고아 먹여 낫게 한 것이나 폐암 환자를 수백마리의 땅벌에 쏘이게 하여 치료한 사례 등은 천문지리의 원리를 꿰뚫은 선생의 직관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선생은 아홉 살 때 한반도에 전래 되어온 소금 제조법을 보완, 소금을 대통 속에 다져 넣고 송진 관솔 등을 이용해 강한 화력으로 아홉 번을 구워야 제대로 법제된 소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견해를 조부께 피력하기도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왜 소금을 구워서 사용해야 하는지, 왜 대통이나 송진 등을 사용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다만 습관적으로 그렇게 해왔을 따름이었다. 오늘날 세상에 널리 알려져 유통되는 죽염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열여섯 살 때인 1924년에는 의주에서 횡포를 일삼던 일본인 청년들을 제압한 뒤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선생은 항일운동의 영웅 변창호 선생이 이끌던 모화산 부대에 들어가 항일전투에 참여하였고, 이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러시아, 묘향산 등지를 떠돌면서 병자를 구료한다. 오지(奧地)를 전전하던 이 시절의 선생은 탄광 광부들 사이에 유행하던 진폐증을 탕약과 쑥뜸요법을 병행하여 완치케 하였으며, 죽염제조 실험을 거듭하여 성공한다.

일제의 모진 고문 쑥뜸으로 이겨내고, 탈옥한 뒤 송만공, 김수월, 하동산, 방한암스님들과 교유

스물여섯 살 때인 1934년 봄철 어느 날, 철원경찰서 습격 사건의 주동자인 모화산 부대 대장 변창호 선생을 만나러 철원으로 가던 도중 일제의 앞잡이 형사에게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춘천형무소에서 복역한다.

여러달 계속된 모진 고문으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복역 1년 6개월째 되던 어느날, 형무소를 탈출하여 묘향산으로 들어가 선생 자신이 창안한 인산쑥뜸법, 곧 영구법(靈灸法)으로 병을 치료해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때 함께 고문받았던 동지들 중 쑥뜸을 뜨지 않았던 이들은 고문 휴유증으로 대부분 생명을 잃는다. 묘향산에 들어간 선생은 당대의 걸출한 선지식이었던 송만공, 김수월, 하동산, 방한암 스님들과 교유한다.

서른 다섯 살 때인 1943년 장영옥 여사와 혼인한 선생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당시 은신해 있던 의주 천마산 영덕사에서 하산하여 서울로 와 여운형, 방주혁, 김규식, 백성욱, 이명룡, 최영호, 백운계, 송진우, 김성수, 김범부, 정인보, 장덕수, 김준연, 조병옥 선생들과 국사를 의론한다.

정부수립 직후 양한방 종합병원 건립을 시도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양한방종합병원과 동서의과대학 설립을 제안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1950년에는 당시 내무장관이던 백성욱 박사를 통해 대통령께 전쟁 발발에 대한 예언을 하며 대책수립을 건의하였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처럼 정권이 무조건 미국만을 추종하는 사대주의로 기우는 한편 개인독재로 치닫고, 세상에 대한 자신의 제안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자 희망을 포기하고 세속을 떠나 입산한다.

1950년부터 선생은 충남 공주 마곡사 부근, 계룡산 감나무골, 계룡산 용화사 부근, 전북 남원과 운봉 마을 등지에서 머물다 1957년 함양으로 건너온다.

함양읍내에 잠깐 기거하다 삼봉산 살구쟁이 마을(杏亭洞)에 인산초당을 짓고 함지박을 깎으며 생계를 이어간다. 숨어살아도 명성은 드러나 서울과 각처에서 학생들이 몰려와 선생의 신약과 역철학 등을 강의받았다. 어느 곳이든 선생이 머물던 곳에는 기적같은 구료의 신화가 계속된다. 이 시절까지 선생은 환자 구료의 중요한 수단으로 침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난치병 환자들의 종착역, 삼봉산 인산농장과 삼남댁 신약당

함양으로 낙향하기 직전인 1980년에 선생 최초의 저술인 ‘우주와 신약’을 펴낸 데 이어, 1981년에는 ‘우주와 신약’을 한글화한 ‘구세신방’을 연이어 출간하여 자신의 의론을 세상에 공개하기 시작한다.

1981년 12월 31일 함양읍으로 낙향하여 운림초당에 거처하던 선생은 78세때인 1986년 우리나라 현대의학 사상 불멸의 대저술로 손꼽히는 ‘신약’을 드디어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는 곧바로 노구를 이끌고 전국을 돌며 공개강연회를 갖는다.

1986년 신약협회 초대회장, 1987년 민속신약연구회를 발족시키고, 곧이어 인산의학 최초의 정기간행물인 ‘민의약’을 발간한다. ‘신약’의 출간으로 선생의 독창적 의론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선생이 머물던 함양 읍내 상동마을과 이곳 함양읍의 삼남댁 신약당과 삼봉산 인산농장 일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그야말로 구름처럼 몰려든다.

78세 때인 1986년 6월 20일 한국일보 대강당에서 시작, 83세 때인 1990년까지 도합 22차례의 공개강연회를 통해 공해독 시대의 건강법을 제시한다.

神醫, 선계로 떠나다.

84세 때인 1992년 임신년 음력 3월 3일, 가족들을 모이게 한 뒤 ‘세상에 남기고 가는 말’을 녹음토록 한다. ” 인업을 중시함이 부국의 지름길 ” 이라는 요지의 이 말씀은 유언이 되었으며, 그 녹음한 전문이 시사춘추 92년 4월호에 수록되었다.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가난하고 병든이들에 대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충정, 세상 사람들에 대한 효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선생은, 1989년부터 1992년초까지 삼남댁인 신약당에서 거처하며 사리장을 최후로 개발하고 밤낮 밀려드는 환자들을 구제하다가 과로로 인해 1992년 5월 19일(음력 4월 17일) 오후 11시 25분 향년 84세로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마감하고 선계로 떠났다. 선생이 가신 뒤 생전에 환자들을 맞아주던 삼봉산 인산동천 산등성이에 법구를 안장하였다.

1993년 이후로 신약당에 설립된 출판사(현재 인산출판사)에서 선생의 어록과 원고 등을 정리하여 ‘신의암처방집'(민간요법,대체의학의 바이블이 되었다) ‘신의원초’ ‘의사여래’ ‘의약신성’ ‘활인구세’ ‘신약본초3’을 엮어냈다. 1992년 신약협회 2대회장 삼남 김윤수가 선생 서거 10주년을 맞이하여 2002년 사단법인 인산학연구원을 세우고 인산한의원, 인산한방암센터를 부설하여 인산의학과 한방암치료법을 널리 펴고 있다.

병은 양기(陽氣)가 물러가고 음기운이 와서 생기는 것!

양의 기운을 돋구는 불덩어리 유황
오리의 해독력을 승화시켜 양기를 돋구는 마늘과 파

인산본초

금은화, 포공영, 유근피

인산 : 응. 대장염 약이니까. 오리에 금은화 포공영은 대장염 약이니까. 대장염의 염증이 갑자기 소멸되지 못하니까 그런거지.
질문자 : 앞으로 괜찮아요?
인산 : 나쁜 약이 아니니까. 싸악 물리쳐져요. 그게 무서운 약은 안들어가. 피가 멎으라고 연뿌리 들어갔으면 피가 멎었으면 그게 연뿌리가 있는지 몰라.
질문자 : 연근은 안들어가고 금은화하고 유근피만 들어갔는데요.
인산 : 응. 금은화 유근피. 옻을 넣으면 더 좋지. 닭에다 고아먹든지 오리에다 고아 먹으면 괜찮아.
질문자 : 금은화하고 유근피하고.
인산 : 오르긴 올라요.
질문자 : 그러면 연뿌리를 구해서 그기에다가 넣을까요?
인산 : 안돼. 연뿌리 들어가면 대장이 더 아파. 금은화 유근피는 대장에 아주 좋은 약이야. 일없어요.

백강잠

인산 :내 얘기는 참고루 하는데 뭐 있느냐? 내가 약국도 해보며 별 짓 다 해보는데. 그 약제를 내가 지금 백강잠을 꼭 필요로 하는데 중국서 안나와요. 원백강잠이. 이래서 국산을 쓰는데 진짜 중국보다 더 효과나는 백강잠이 있거든 우리나라에. 고걸 쓸라면 어떤 애로가 있느냐. 그거 한 근을 쓰는데 백강잠은 서근을 사와야 고거 한 근이 나오거든. 그런데 이 파리약을 쳐가지고 누에 오르기 직전에 죽여가지고 나오는 것도 백강잠이 많아요.

그걸 내가 봤거든. 그러면 그 사람을 욕하느냐 현 세상이 이러냐? 그래서 고걸 말리운걸 내가 짤라봤거든. 짤라보니 이거 썩어서 마른 게 아니고 고렇게 해서 바싹 말려 놓으니 깨끗하게 말랐는데 아무것도 없어. 깝데기 밖엔 없어. 파삭파삭하거든? 그러니 이건 쓰지 못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그걸 세상에 말할 수 없어.
아무개가 그러더라 이럴 순 없잖아? 그러면 그 사람 혼자하는 게 아니라 이 백강잠 속엔 그런 약이 들어와 있을 건 사실이거든. 그러면 이걸 고누면(골라내면) 이속에서 쓸 약은 얼마 안된다. 내가 경험한 약은 얼마 안되거든. 그래서 만약에 건재를 내가 아는 사람이 여게 와서 한다면 그건 내가 화제 쓴 것만 팔아도 밥은 먹을 수 있어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한데두.

복어알

여기에도  복어라고, 보가지라고 있어요. 복어알로 나는 일본때에 여러 사람을 살렸어요. 그걸 폐병 4기다, 이제는 며칠 안 산다, 그럴 적에는 생강을  아주 두치 세치 두께로 솥에다가 넣고, 옛날 솥은  두꺼워요, 거기에다가 장작불 때 가지고 복어알을 그 속에 넣고 흠씬 찝니다. 흠씬  쪄  가지고 말려서 한 번 쪄서 분말해 가지고 이거 좋은 약이니 부지런히 생강차에다 멕이라. 우리 할아버지가 대학자고  약(藥)에 밝고, 그러니까 그 할아버지한테서 배웠을 거다 하는  거라. 전통적인 관념이 있어요, 우리 나라는. 그래서 내 말을 듣는 사람 혹여 있어요. 저놈 미쳤다는 사람도 있고. 그래 먹어 보면 아무 이상이 없이 산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다섯 번  이상을 생강에다 찌게 되면 약이 잘 안돼요.먹긴 좋아도. 다섯 번  이상 쪄 가지고 성한 사람이 먹으면 새벽에 배가 조금 아파요. 안 아픈  사람이 개중에 있는 건 대장염(大腸炎)이라. 대장염이 있는 사람은 안  아파요. 그래서 아홉 번을 찌게 되면 먹을수록 사람이 좋아요.  위장도 튼튼하고 다  좋아지는데,

서목태

서목태(鼠目太)라는  쥐눈이콩 새카만 거 있어요. 그놈은 상당한 무서운 해독제(解毒劑)입니다.  이 당뇨가 뭐이냐? 이떤 독성(毒性)이 폐에 들어오면  어찌 되느냐? 조갈(燥渴)이 생긴다.  어떤 독성이 비장(脾臟)에 들어올때에는 허기증 들어온다.
콩팥에 갈 때엔 그땐  전신이 부었다 내렸다  한다. 거  마지막 하소(下消)지, 이런데. 여기에 있는 치료법이 가능한 거 서목태라. 일반 콩도 좋아요. 아침 저녁으로  그걸 처음에 조금씩이 먹다가  설사가 안 날 정도면 한사발씩 먹어 두면 아침 저녁 공복에 그렇게 신약(神藥)인데, 이 당뇨를 고칠 수  있는 약물을 두고 왜  앓느냐? 인슐린 맞고 세월 보내다가 죽어야  되느냐? 합병증에 걸리고  마느냐? 콩을 가지고 이렇게 하면 원기가 왕성한데 합병증은 왜 오느냐? 그러나 이것은 공공연하게 세상에 댕기며 내가  떠들 순 없어.콩에 대한 비밀은 태백성정(太白星精)이기 때문에  당뇨는 꼭 나아요. 조갈이란 건 폐에서 이뤄지는  것. 폐에서 화독(火毒)을 범하면 거 조갈증인데 거 당뇨 시초라.

연근

피가 멎으라고 연뿌리 들어갔으면 피가 멎었으면 그게 연뿌리가 있는지 몰라. 연뿌리 들어가면 대장이 더 아파.

오이

토종오이 아닌 개량종을 가지고  내가 급해서 아는 사람들이  여러 사람이 지내 온 일인데.  불에 데요, 불에 델 적엔 토종은 틀림없는 걸 알지만 저 개량종도 될거냐? 그러나 원래 급하니까 개량종 오이를 생즙 내 멕이라고 하지. 할 수 없거든.그걸 생즙  내 멕여도 그 자리에서 아픈 통증도 덜어져요. 완전하진 않아도 우리 토산오이는 한사발 먹으면 즉석에서 아프지 않아요.
얼마 안 가서 딱지  떨어지고 이래서 내가 신비의 하나를 알고 있어도  이거이 내 마음대로 못하는 거이  현실이라. 그래서 불에 덴 사람을  개량종 오이 가지구 구해 준 사람들이 세상에 하나가 아니고  많은 수에 있어요.  그래서 개량종  오이도 약간은 효(效)나.그러면 우리 나라에 여성정(女星精)으로  생(生)하는 풀이 있어요.
그게 옛날에 우리  토산오이라. 그 오이가,불에 죽을 적에  화독(火毒)의[치료에 있어서] 신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이 가스의  최고의 핵이 가스불 이런 가스인데, 최고의  핵이 슬쩍 지나가면 그 사람은 몹쓸 병에 걸려서 그게 암(癌)이라,그것두. 그래 감전(感電)이 돼 가지구 모르게 다 타 버려요. 거기에도 신비의 약이라. 그래서 내가 그걸  종지[종자] 없애는 게 너무  아까워서 구해 볼라고 했어도 다니면서리 곁방살이 월세도 못 내서 보따릴 들고 밀어 던지며  나가지 않는다고 쫓아내는 살림을  살다 보니 내가 그 오이씨를 오늘까지 유지를 하지 못하고 그런 그 비밀을 내가  알고도 후세에 완전히 보관해서  전하지 못하는 걸 나도 내 생애에 미안하게 생각해요.

지리산 마천의 옻을  잘 알고 있는데 옻은 왜 거짓이 나오느냐? 건 암약엔 최고인데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위해서는 거짓으로 할 수는 없는데,  이 옻을 처음에 진(津)을 내 가지고 냉수가 조금도 안  들어가면  힘들어요. 냉수만 들어가면  바로 굳어요. 또 냉수만 들어가게 되면  냉수를 거기 적당히 가미하면 단지에 넣어도 단지가 터지지  않아요. 아무것도 안 들어가고 그냥  생옻을 진을 내 가지고 단지 속에 넣어  두면 더운 방에 들어가면 폭발해요. 그래서 이거 어느 한도 내에선 있을 수 있어. 그렇지만 그걸 재미붙이고 도(度)가 지난다. 이  무슨 도(道)구 그래요. 도라는 건 좋아. 자연인데,  자연은 좋은 건데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미(加味)해 놓으면  그건 가짜 자연이지 진짜  자연은 아니라.

유황오리

오리와 유황은 소금과 같이 성질이 짜서 면역성이 강하다.
유황은 잘 법제만 하여 먹으면 장생물이 됩니다. 그러나 장생물이 될 수 있는 법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반인에게는 잘 통용이 안되었습니다.
유황은 천연적인 불로 이루어진 광석물입니다. 돌은 돌인데 불곁에 가면 불이 붙습니다. 가스하고는 다릅니다. 가스는 인간이 법제해 먹고 장생술을 얻기는 힘들어도 유황은 됩니다. 이제부터 화공약 피해자들이 많이 생겨나면 말 못할 괴질 속에서 병을 못 고치고 죽습니다. 이에 대한 실험을 나는 일제시대 때부터 해 보았고, 광복 후에도 계속 해 보았습니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해 보는데 왜냐하면 내가 완전무결해야 세상에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유황은 모든 의서(醫書)에 보면 성질이 덥고, 맛은 담담하고 조금 짜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식물 중에 제일 짠 것은 민들레(포공영 蒲公英)입니다. 그것들은 공간 속의 염분이 합성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염도가 높은 동식물일수록 해독력이 강한데 이런 이치는 바로 금은화, 민들레, 흑염소, 지렁이 등에 적용되고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정목(楨木)이 그렇습니다. 음식물의 부폐를 막는 소금과 그 맛이 짜서 고름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동물 중에 제일 짠 것은 오리입니다.
실제로 내가 민들레를 지켜 보았습니다. 가만이 보면 벌레가 제일 먹지 않습니다. 오리도 마찬가지로 전염병이 없습니다. 그래서 짠 성분을 보아서 유황, 오리가 소염제 역할을 하는, 인간에게 이용가치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주 창조시 찬 기운인 물과 더운 기운인 불이 화하여 생물이 생겨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화(水火)의 힘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만물은 태양의 양기와 달의 음기의 조화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물과 불은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오리는 수기 위주요. 유황은 화기 위주입니다. 이 둘을 조화시키면 신비한 약효가 생겨나는데 그것을 설명하려면 물을 끓이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은 계속 화기를 가하여 끓이면 나중에 백비탕(白沸湯)이라고 하여 단맛이 나옵니다.
원래 물에는 금생수(金生水)라 하여 비릿한 맛이 있는데 계속 열을 가하면 화극금(火剋金)라 하여 비릿한 맛이 없어지고 화기가 앞서게 됩니다.

그런데 화미(火味)인 쓴 맛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불기운이 물속에서 물기운과 싸우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생토(火生土)의 원리에 의해 토(土)의 힘을 빌리니 토극수(土剋水)하여 토미(土味)인 단맛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에 열을 가하는 단순한 과정에서도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우주에서의 각종 변화가 무궁무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리와 유황은 물의 정기와 불의 정기인 수화(水火)의 정기가 모여져 약물의 힘이 강해진 것입니다.

병은 양기(陽氣)가 물러가고 음기운이 와서 생기는 것,

양의 기운을 돋구는 불덩어리 유황
병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음기운이 와서 생기는 것으로 양기에서 생기는 병은 없습니다. 그러면 음기에서 생기는 병은 강해지고 마지막에 인간이 양기가 다 끝나 갈 적에 그것이 병마로 옵니다. 그래서 음기가 강해서 음귀가 사자(死者)가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 그 모든 양물은 양기를 도와 가지고 양기의 합성 비밀이 강하게 되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리의 해독력을 승화시켜 양기를 돋구는 마늘과 파
오리에 마늘을 넣는 화제(和劑)를 잘 하는데, 오리는 모든 해독제요, 보양제입니다. 우선 해독을 시키면서 양기(陽氣) 돋구어야 됩니다. 양은 다시 거악생신(去惡生新)제가 됩니다. 마늘은 보양제이며 거악생신입니다. 옛날 본초강목에도 소개되었는데, 마늘은 독(毒)이 있으나 옹(癰)의 독을 다스릴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마늘의 독에는 암독(癌毒)을 풀어 낼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늘을 내가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또 옛날 양반 말씀하는 오리의 비밀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리에 마늘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유황 오리에 논 마늘은 금기
그러나 논 마늘은 쓰면 안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위험합니다. 지금 논은 파라티온(parathion) 독이 극에 달아 있습니다. 논이 아니라, 흙이 전부 수은독입니다. 이래서 고추 심은 것을 우리가 모르고 김장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위험이 참으로 많습니다. 앞으로 점점 혈관에 암세포가 번성돼 가는 오늘에, 그런 걸 먹으라고 가만 둘 순 없습니다. 그런 걸 될 수 있으면 주의해야 됩니다. 생산한 사람한테 피해가 좀 있긴 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한번 간 뒤에 인간의 힘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난 죽은 사람 살릴 힘이 없으니 안 죽게 하는 방법만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논에 마늘을 심고, 고추를 심어 시커멓게 독이 오를 적에 그걸 짐승들에게 먹여 보아요, 얼마나 무서운가 ? 그걸 사람이 먹는다는 것은 끔찍합니다. 오늘날 암세포가 완전히 체내에서 조직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암이 발생하도록 독촉할 것까진 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생콩을 어떻게 해먹으면 당뇨가 낫느냐?  이런 데  대한 얘기는 자연 그대로지. 이콩이라는  건 태백성(太白星) 정기를 응(應)했기 때문에 사람의 손엔 사람의 몸엔 금(金)기운이 있어요.  철분이 있는데 사람의 손으로써 콩을 맨져서 먹으면 생콩이 비려요. 소나무 주걱을  맨들고 소나무  절구통에다 소나무 바가지에다가 불쿼 가지고[불려 가지고]  물도 수돗물 안하고 약수를  떠다가 해 가지고 그걸 나무절구에 빻아  가지고 쇠가 안 가고 손이 안 가고 돌맹이가 가면 안  돼요. 돌도 그  속엔  금성분(金成分;금속성분)이 많아 가지고 비립니다. 그래서 이런 거  전연 없이 해 가지고 먹어 보시오. 얼마나 구수한가?  이걸 아침 저녁으로 공복에  먹으면 건강에도 유익하고.

호박

우리 나라 옛날 호박은 10년 묵히면 산후부증엔 백발백중인데, 왜 그런  좋은 종지는 싹 버려야 되느냐? 내  마음이 괴로워도 전 인류에 대해서 한마디로 될 순 없어요.

홍화씨

그러고 모든 의서(醫書)에 보면  없는 거이 전부인데, 홍화씨가,홍화(紅花;잇꽃,옛날에는 빨간색 물감 원료로  쓰였음)에 대한 설명은 있어요. 3푼부턴 생혈(生血)이고 5푼 이상은 파혈(破血)이다. 건 사실인데, 그럼 왜 그런  약물에 들어가서 그 약물의 핵심처는 씨다, 그거야. 핵이니까. 핵은 인(仁)인데 홍화인(紅花仁)인데  그걸 왜 이용하지 않았더냐? 그래서 내가 어려서 이용하는데 먼저 사람에 쓰는건  급하고  없으니까, 그래서 송아지 다리도 분질르고 멕여보고 개다리도 분질르고 멕여보고, 여섯 시간을  내가 시계를 두고 지키고 봤어.여섯 시간에 정상회복 돼. 그래서 운동대에서 떨어진 친구들이  팔이 불러진 거,다리 불러진 거, 고걸 분말해 가지고  고운,저 가루를 이제 볕에 쪼이면 가루로  만들면 돼요. 그러지 않으면  기름 때문에 안돼요. 그래서 고걸 멕이는데 한 숟가락을   멕이고 지키고 있는데 10세 전후에는 열댓살까지는 6시간 안에 완치되는데도 더디  아물어요.

그러면 그거이 왠  일이냐? 홍화씨라는 고놈 자체가 그 몸떼기  중량의 3백60분지  1이라는 백금(白金)이 들어 있어요. 그러면 이런 백금을 우리가  버리고 있다. 그러면  옛날 양반이  알았다는 것이 도대체 뭐이냐?  홍화씨의 이런 무서운  백금이 3백6십분지 1이나 들어 있는데 이걸 왜  이용하지 않느냐? 낳아서 기르는 닭의 알은 계란 깝데기가 석회질이 흰자위  36분지 1이 있어요. 그래서 하루 저녁에  그 두꺼운 깝데기가 돼요.

그런데  그것이 접착제가 이뤄질라면 뭐이 되느냐? 접착제는  백금이라. 백금 성분은 3천6백분지 1이  있어요, 계란 흰자위에. 그러면  계란 흰자위 속에 백금 성분이 3천6백분지  1이다. 그런데 이 홍화씨 속엔 3백6십분지 1이다. 10배가 더 많아요.

이런  아까운 신약(神藥)을 어찌 버려 두는가? 그러고 오리란  놈이 또 여성정(女星精)으로 나오는데  그 오리뼈를 고아 먹으면  뼈를 잘르고 수술한 것도 살아나요.  그러고 뼈가 굳어지고 그런  걸 다 실험하고 난  후에 앞으로 하나하나 실험을 거쳐 가지고 배우는 사람들이 실험을 다거치면 나보다가 나은 사람이 될 수도있는 거요. 꼭 나만이 된다는 건 없어요. 내게서 배운  사람이 나보다 나아지면 그런 세계가 오기를 나는 원하니까,

인산의학총서

인산 김일훈 선생은 독창적인 의술로 수만은 암환자 및 난치병자들을 치료 구활하여 신의(神醫)로 불리운다.

팔십 평생 가난과 고난속에서 병자들을 구료하여 참 인술을 실현하여 20세기의 의성으로 추앙받는 인산 선생께서는

항암제제(인산탕약, 오핵단 삼보주사), 죽염 , 홍화씨등

수만은 신약을 창안 <신약><신약본초>등 여러저서를 통해 이를 만천하에 공개하였다.

인산출판사 출판

신의원초 神醫原草 : 3만원

신의원초 神醫原草 : 3만원

의사여래 醫師如來 : 3만원

의약신성 醫藥神聖 : 3만원
(품절)

활인구세 活人救世 : 2만5천원
(품절)

인산동천 출판

신약 神藥 : 1만5천원
(품절)

신약본초 神藥本草 : 3만원
(품절)

신약본초후편 神藥本草後篇
: 3만원

죽염요법 竹鹽療法:1만5천원
(품절)

기타도서링크

전화: 055-964-1777

E-mail: kim@insan.com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595-47 사단법인 인산학연구원 인산한의학

인술 정신 인류 건강

사단법인

인산학 연구원

인산 선생의 숭고한 인술 정신을 이어받아 인류 건강에 공헌하고자 노력하는 인산 암의학 그룹

문학, 사학, 철학, 과학, 전통의학, 삼교사상, 토종문화, 향토문화 등 민족문화에 영향을 끼친 인산 김일훈 선생의 인산문화를 연구하고 선양하는 비영리법인 학술문화 연구기관입니다.

한의학의 3대 의성

한의학의 개화-집성의학-동의보감

구암 허준 선생

한의학의 발전-사상의학-동의수세보원

동무 이제마 선생

한의학의 완성-인산암의학-신약본초

인산 김일훈 선생

인산 김일훈 선생

죽염, 유황오리의 발명가, 홍화씨, 다슬기의 발견자

암치료 한의학 인산암의학의 창시자

한국 암의학의 아버지 인산 김일훈 선생(1909~1992)은

동양의 위대한 선각자들과 같이 동양문화의 근저인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을 종합하여 한국적 독자적 의교사상을

창조, 가미하여 활인핵사상과 인산암의학을 완성하였습니다.

인산 암의학 그룹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595-47

대표 전화 055-964-0599

팩스 전용 055-964-0399

인산암의학함양역사관 연혁

1993년 6월 9일 인산출판사(대표 최은아) 개업, 인산암의학총서 발행

1996년 7월 함양역사관 개업(사업자등록)

관장 김윤수(인산의학회장,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국사편찬위원회 함양군 사료조사위원)

1998년 7월 사단법인 인산학회 설립 발기(불발)

1998년 12월 한국인산의학회 창립(회장 김윤수)

1999년 2월 인산의학회 부설 인산가한의원 개원(insan.or.kr)

1999년 7월 함양역사관 홈페이지 개통(hamyang.org)

2002년 8월 8일 사단법인 인산학연구원 개원(insan.org)

2004년 6월 11일 인산한의원 부설(insan.co.kr)

대표이사 최은아(인산죽염촌 주식회사 대표이사, insan.com)

2004년 11월 11일 계간 인산한방암센터 개업(정기간행물등록)

2005년 11월 인산한방암센터 주식회사(대표이사 최은아) 개업

2005년 11월 월간 인산한방암센터(발행인 최은아) 등록

회장(인산선생삼남)
김윤수 kim yun su

주요저서

김윤수 교감 《교감국역 남명집》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편역, 이론과실천, 1995.2
김윤수 해설 《문화재도록》 함양군, 1996.4
김윤수 해설 《대한도장해설》 신약당, 2000.12

상훈

1980년 국역연수원 수석졸업 문공부장관상
1998년 문화재조사 함양군수 감사패

대표이사(인산선생삼남자부)
최은아 choi eun a

편서 · 저서

편서 : 안산암처방집, 신의 원초, 의사 여래, 의약 신성, 활인 구세, 신약본초 후편, 신약본초 3
저서 : 유황오리와 다슬기, 인산의학 식품 건강법, 함양 죽염 축제
공저 : 환희-여성발명가 15인의 인생과 발명 이야기

김윤수 프로필

관향은 彦陽, 신라 경순대왕 제칠왕자 언양군 金鐥의 32세손
고향은 咸陽, 경남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행정동 죽염골
道鄕은 華陽洞, 尤庵 宋子-화서-중암-성재-의암-充齎-仁山
도호는 參陽子 아호는 含山, 雪滿軒(연민선생제호), 神藥堂 한글호는 의벗
인산 김일훈 선생의 삼남.
인산선생은 한방암치료 전문 인산암의학의 창시자,
죽염,자죽염,사리장,홍화씨,민물고둥,유황오리,무엿,호두기름 등 신약식품의 발명가

1959년 5월 3일 경남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행정 출생
1978년~1980년 국역연수원 연수부 수석 졸업 문화공보부장관상 수상
1981년~1984년 국역연수원 상임연구부 3년 졸업
1980년~1984년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과 수료
1999년~2002년 중국 사천대학 종교학연구소 도교학전공 연구생 수료

1985년~1989년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 전문위원

1989년~1992년

함양에 귀향 인산선생을 모심

1990년~1998년

 (주)광제원 고전국역연구소 소장

1992년~1994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연구위원

1995년~1999년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1996년~2001년

 국사편찬위원회 함양군 사료조사위원

1996년

 《함양문화재도록》편찬위원

1996년 ~1999년

 함양군문화재조사위원

1996년~현재

 함양역사관 관장

1997년

 현 함양문인협회 회원, 번역분과위원장

1998년12월1일~2002년 8월

 한국인산의학회 회장

1999년

 점필재차밭조성기념비추진위원

1999년

 문태서장군사적비건립추진위원

1999년2월~2002년 6월

 인산의학회 인산한의원 부설

2002년 8월 8일

사단법인 인산문화연구원 설립 원장

1999년 5월~2001년 5월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학과 동문회 회장

1999년 ~2001년

한국도교학회 이사

2000년

함양역사인물공원조성추진위원

2001년 ~2003년

한국도교학회 섭외이사

2002년 8월8일

사단법인 인산문화연구원 설립 원장

2003년 12월~현재

 한국도교학회 부회장

2003년 7월

일두사상연구원 총무이사

2003년 2월

인산주식회사 대표이사

2003년 5월

주식회사 지리산뉴스 대표이사

2003년 8월

<인산문화> 창간호 발행

2004년 6월 11일

사단법인 인산문화연구원 부설 인산한의원 설립

2005년 1월

사단법인 인산학연구원 원장

2006년 3월

한국동양철학회 이사

2006년 5월

용추국제자연예술제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