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아 한의학 박사 칼럼

말기암 간전이암

작성자
인산한의원
작성일
2022-08-21 13:30
조회
258
셋째아들이 암환자를 대면하는 서울 인산한의원 원장을 맡게되자 도와줘야 할 것 같아 며칠 같이 출근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수술 항암 후 재발되어 오는 말기암 환자들을 계속 보면 무력감에 흔들린다. 치료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을 그냥 돌려보내야 하나, 만에 하나 기적을 기대하며 그래도 노력해야 하나.
수십년 겪으면서도 늘 좌절감의 늪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내 뇌는 이런 상황을 잘 극복하지 못하는 유전적 기질이 있나...
인산선생은 도저히 안될 환자들에게도 처방을 내려주셨다. 내 머리속은 그럴 때면 좌절감, 무력감, 번민, 혼란에 빠지는데. 다 때려치고 도망치고 싶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내 인생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두 발은 끝없는 허무감으로 떨어져내리는 것 같은데...
인산선생은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나는 욕심이 많고 내 능력을 모르고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기 싫은 오만과 어리석음때문에 괴로워하는 걸까. 평생 나를 쫓아다니는 무력감과 허무감의 원인은 뭘까...
인산선생은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나는 욕심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평정심을 갖고 싶다.
피부병이나 초기 암환자, 젊은 사람은 완치가능성이 높으니 반갑고 수술과 항암과 재재발에 시달려온 말기암, 답없는 연로한 환자는 외면하고 싶어진다.
내가 뭐라고, 나는 왜 오만하게 내가 하는 일은 완전히 가치가 있고 의미 있고 결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 나와 같은 번민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한 명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네가 하는 일에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인산선생은 초기암환자든, 말기암환자든, 젊고 기운이 왕성한 환자건, 기력이 다 소진된 노년의 환자건 똑같이 대하고 똑같이 흔들림없이 처방해주셨다."

이렇게 글로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평온해지고 무가치감(끝모를 허망감)이 사라진다.

자식들이 어떤 삶을 살든지 나는 지지해주고 싶다. 어떤 길이 싫다고 벗어던지고 다른 길 간다면 나는 무엇이든 지지해줄거다. 나도 살면서 많이 변했다.

ㅡㅡ생각났다.
내가 허망감에 빠져드는 이유는 가능성 없는 재발 말기암환자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보다 내가 믿고 있는 의학이 아무 소용없어진다는 것이 싫어서이다. 내 믿음, 내 가치관의 손상이 타인(환자)의 생사고통보다 더 중요해서였다. 인산선생은 '내'가 없고 오직 타인의 생사고통만 보기 때문에 나와 달랐다. (그리고 인간의 죽음, 소멸을 직면하는 것이 내게는 엄청난 부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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